퀴즈 1. 여자들이 성행위를 하고 싶은 계절은 특히 ( )인데 비해, 남자들은 특히 ( )에 성행위에 더 끌린다.
퀴즈 2. 성도덕에 관한 고찰에서 종종 부딪히게 되는 4가지 개념 중 '활용'의 개념은?
퀴즈 3. 여성의 ( )은 본성과 조건의 열등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비난받아야 할 행위는 아니다. 왜냐면 그것은 본성이 원하는 바와 여성의 지위가 부과하는 바에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정답 1. 여름, 겨울 2. 크레시스 3. 수동성
논제 1. 왜 그리스에서는 소년과의 사랑이 자연스러운 범주에 속했을까?
논제 2. 여성과 소년은 수동적인 존재여야 한다. 그리스에서 남성을 능동적으로, 여성을 수동적으로 본 것과 마찬가지로 동양에서는 남성을 양으로 여성을 음으로 보았다. 그렇다면, 왜 동양에서는 소년에 대한 사랑이 자연스런 사랑의 범주에 들지 못했는가?
논제 3. 그리스에는 성행위는 만약 절제하지 않고 적절히 배분되지 않는다면, 의지를 넘어선 힘의 폭발, 에너지의 쇠진, 고귀한 자손을 남기지 못한 죽음, 의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라 믿었다. 고대 중국문화에서도 이와 동일한 주제가 발견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코는 그에 대한 답변이 다르다는 점에 주목한다. 즉, 여성과의 성교는 여성이 지니고 있는 생명의 원리와 접촉하는 방법, 그리고 그것을 흡수함으로써 그것을 이용할 수 있도록 내재화하는 방법으로 이해되기 때문에, 올바르게 행해진 성적 활동은 모든 위험을 배제할 뿐만 아니라 존재를 강화하고 회춘하게 하는 효과를 가질 수가 있다는 것. 그렇다면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하게 된 것일까?
논제 4. 푸코는 소년에 대한 담론이 여성에 대한 담론으로, 이후 다시 몸에 대한 담론으로 변화된다고 한다. 왜 이런 변화가 오게 되었을까?
성의 역사 2에서 고찰한 그리스 시대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자유인 남성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도시국가에서 자유인 남성은 누구보다 고귀하고 찬양받아 마땅한 존재였던 것으로 보인다. 직접 민주주의를 택하고 있는 도시국가였던 만큼, 직접적인 투표권을 가지고 있는 자유인 남성의 중요성은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으로 뚜렷이 드러나는 특징이었을 것이다.
때문에 그리스 시대에는 자유인 '남성'만을 개인적, 사회적 주체로 인정한다. 여기서 이 지점에서 소년에 대한 사랑은 자연스러운 범주로 자리잡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즉 자유인 남성이 될 소년을 사랑하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던 것이다. 특히 소년과의 사랑에서 가장 담론화가 되었던 것은 나이 많은 남성과 어린 소년과의 관계인데, 흥미로운 것은 여기서 중요시되는 것은 소년의 관점이라는 것이다. 왜냐면 그 소년이 자라나 도시국가의 위정자가 될 사람이므로 그의 명예를 지켜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자유인 남성을 중요시하는 그리스 시대의 상황때문에 탄생한 도식인 듯 하다.
여성과 소년이 모두 상대적으로 수동성을 특징으로 하지만, 여성은 그 수동성이 본성인 반면, 소년에게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자유인 남성의 아름다움을 찬양하고 그와 사랑에 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자연스러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소년이 수동성을 버리고 능동성을 찾게 될 그 지점까지 고민하면서 관계를 가져야 하는, 그런 상황이 연출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잠깐 다른 논의를 했는데, 우리 모두 여성이므로, 왜 여성을 수동적으로, 음으로 생각하게 되었냐는 것이다. 실제 여성의 몸이 차고 습해서 그러한가? 여성과 남성은 정말 다른 본성을 가지고 다르게 태어나는가? 혹시, 사회를 관리하기 편하기 때문에, 개인들이 살아가기 편하기 때문에 이루어진 도식화의 한 부분만은 아닐까? EBS 다큐멘터리 아이의 사생활을 보면, 여성과 남성의 뇌 발달은 과학적으로 전혀 다르게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다큐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생후 4개월된 아이들은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지 못하고, 만 4세 아이들은 여성과 남성의 본성적 다름을 가정하지 못한다는 것이 아닐까. 즉, 사회화 과정 속에서 스스로를 여성과 남성으로 구분해, 스스로 성적 정체성을 발달시키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야생의 늑대무리에서 자라던 한 소녀는 결국 인간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았다.
하지만 이런 빈서판 이론 (태어났을 때는 아무 것도 쓰여지지 않은 빈 판이다)은 유전학적인 고찰을 전혀 무시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과연 사회학적으로 형성되는가? 아니면 정말 다른 것인가? 설사 유전학적으로 영향이 있다 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환경이지 않을까?
그 다큐에서도 말하듯, 차이는 차별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저 다를 뿐, 어느 쪽이 열등한 것으로 여겨져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푸코가 책에서도 인용했듯이, 그리스 시대에는 여성의 수동성을 그 자체로 열등함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보았다. 다만 본성이기 때문에 비난받아서는 안된다는 것일뿐 - 그런 식으로 항상 여성은 열등한 존재로 여겨져오지 않았는가? 이런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다시, 논제로 돌아와서 그리스는 자유인 남성을 중요시했다는 측면에서, 부계혈통을 중심으로 하는 전형적인 가부장제 사회와 상당히 비슷한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두 사회 모두 여성의 열등성을 자연의 한 부분으로, 본성의 한 부분으로 보았던 것도 비슷하다 할 것이다. 그리스 사회에서는 이를 수동성으로 보고, 동양에서는 이를 '음'으로 보는 것이 다르달까. 물론 차이가 있다. 수동성은 능동성의 상대적 개념이지만, 동양의 양과 음은 함께 있어야만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즉 동형성과 이형성의 차이로 보인다.
이런 유사점에도 불구하고 왜 동양에서는 소년과의 사랑이 허락되지 않았을까? 그리스 시대는 철학, 즉 이성적 사고를 매우 중요시하는 사회였다. 도시국가를 다스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아, 바로 주체였다. '아프로디지아'를 생각함에 있어 이성을 잃어버리게 되는 그 상태를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이런 데서 기인하는 것이다. 물론 '남성'을 중요시하는 문화도 크게 작용한 듯 하다. 즉, 사정을 통해 남성의 중요한 일부를 잃어버릴 것을 염려했던 것이다. 하지만 동양은 전형적으로 '자연'을 중요시했다 즉 주체보다는 주체와 자연의 관계, 조화로움을 중요시했던 사회였던 셈이다. 성관계 역시 여성과의 접촉을 통해, 즉 음의 기운을 만남으로써 남성이 더 완전한 존재로 거듭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소년과의 관계는 자연스럽지 않은 관계로 보였을 것이다.
또 하나, 경제적으로 그리스는 도시국가였으나, 동양사회는 전형적인 농경사회, 즉 노동력이 중요한 사회였다. 여성과의 성관계가 장려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여성의 수동성은 동양에서도 여전하다.
논의 중에 한국의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는데, 조선 중기 이전에는 궁 안에서 궁녀들과 왕비들의 동성애가 꽤 많이 목격되었으나 이에 대해 엄격하게 다스리지는 않았다고 한다. 예를 들어 조선 세종 때도 동성애를 금지하기는 하지만, 처벌을 받을만한 사례가 기록된 것은 없다는 것. 이는 사회가 좁을 수록 다양성을 인정해주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잇었다. 즉, 서로가 서로를 알기 때문에 규범을 어기는 짓이라 해도, 법을 어긴게 아니라면 이해해줄 수 있다는 것 -
논제 4와 관련해서, 여성에 대한 담론으로 발전되는 배경에는 르네상스 이후의 '자유연애' 풍조가 배경이 된 게 아닐까 하는 의견이 있었다. 즉, 자유연애가 로맨스와 로맨티스트 등에 대한 환상을 가져옮으로써, 적어도 겉으로는 남성이 여성에게 구혼을, 고백을 하는 관계로 바꿨다는 것이다. 초기 관계의 주도권이 여성에게 넘어갔기 때문에 여성에 대한 담론이 그만큼 많아진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다.
스터디 끝 무렵에 살짝 샛길로 샜는데, 바로 그리스 시대와 현대 시대의 도덕성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 둘 다 민주주의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직접 민주주의를 택했던 그리스 시대가 자아에 대한 도덕성의 잣대가 훨씬 더 엄격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와 대의 민주주의로 이뤄진 현대사회에서는 자본주의적 욕망 안에서만 주체성이 자리잡을 수 있다. 즉, 스스로를 정치적, 도덕적 주체로 키워내는 것을 막고, 오로지 경제적 주체로서만 길러낸다는 것이다. 경제적 주체로서의 자리만 내어줌으로써 개인들은 자본주의 안에서 생산하고 소비하는 주체로서만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독립하면, 진정한 독립이라고 보는 현 사회의 풍조는 돈을 벌어야만 그때부터 인간으로 인정받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자유인 남성에 한하기는 했지만, 정치사회적, 도덕적 주체로 개인이 우뚝 설 수 있도록 교육하고 배려했던 그리스 시대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바로 이 점이 아닐까, 한다.



덧글
lifes for sharing 2009/08/25 13:58 # 답글
아앗, 조선시대 '궁 내' 동성애는 엄격하게 다뤄졌으나 그 양상이나 형식이(비판의 논리가) 기독교와는 현격하게 달랐다는 거였어. 이거 3권 정리해야 하는데, 늦어지는구먼. 미안해~ 가능한 이번주 중에 정리해서 올릴게.